카테고리 없음2017. 6. 3. 21:22

23세기 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는 패배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패배의 수준을 넘어서서 인류라는 이름의 종은 멸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구성원의 총수가 약 80억명 수준에서 순식간에 천여명으로 감소한 상태. 게다가 살아남은 천여명 중의 절대다수가 안정성이 의심스러운 냉동수면(cold sleep) 상태에서 언제 깨어날 수 있을지 보장되지 않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현 상태에서의 인류구성원의 숫자는 확인된 것만 수십여명. 고작 이것으로 '인류'라는 이름을 자처할 수 있을까?


그저 인간이라는 이름의 어떠한 희귀생물체라고 그 분류를 바꾸어 칭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멸종위기생물, 혹은 멸종생물이라는 타이틀을 앞에 붙인다면 더욱 정확할 터이다.


외우주 탐사선. 조금 더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탈출선.


모선급 우주선 방주 4호(M0 class spaceship ARK 4th). 방주 계획-ARK project-를 통해 건조된 함선의 황량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는 중앙통제실에서 그 얼마 안되는 수십명 중의 하나인 '알렉스 크로드'는 멍한 눈빛으로 강화유리 너머로 보이는 검은 우주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방주 탑승자에게는 누구나 한개씩 지급되는 작은 수첩-탑승자들은 이 수첩을 여권이라고 불렀다-과 공용지급 태블릿은 통제실의 중앙에 자리한 대형 디스플레이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상태. 결코 푹신하다고 할 수 없으나 나름 편안한 인체공학적 설계의 '함장석'에 앉아있던 알렉스는 깊은 한숨과 함께 손을 뻗어 태블릿을 집어들었다.


중앙 하단의 버튼을 가볍게 누르고 검지로 화면 중앙을 그어내리면, 작은 기동음과 함께 전원이 들어온다.

익숙한 로고. UN의 마크와 함께 방주계획의 로고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떠오르는 것은 그다지 컬러풀하지 않은 화면. 전체적인 전력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광량도 조절되어 그다지 밝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주라는 것이 그리 밝지 않은 곳이 많은 탓에 화면을 인식하기엔 충분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23세기의 밝고 화려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알렉스로서는 불만이 없을 수는 없는 터, 그는 작게 혀를 차며 푸른 색으로 표시되는 텍스트와 도표를 느릿한 시선으로 훝어나간다.


"급할 건 없지. 시간이야 뭐... 썩어나갈 정도로 많아."


알렉스는 듣는 이도 없는 혼잣말을 흘려보내며 태블릿을 조작했다.


몇 없는 메뉴를 휙휙 던지듯 드래그하여 설정 메뉴에 접속한 후, 'ADA CONNECT'라는 메뉴를 터치한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로딩그래프. 100%에 도달한 그래프가 사라진 후, 태블릿의 화면에는 'ADA ACTIVE'라는 텍스트가 떠오른다. 별다른 효과음이나 극적인 무언가도 없이, 태블릿의 화면은 초기화면으로 돌아간다.


알렉스는 조금은 헤메는 듯한 동작으로 함장용 좌석의 팔걸이에서 거치대를 뽑아올려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살펴보며 태블릿을 부착시킨다. 거치대에 연결된 작은 연결코드를 뽑아내 태블릿에 연결하는 등의 몇가지 작업이 지나가고.


작은 비프음과 함께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중앙통제실에 흘러나왔다.


[모선급 우주선 방주 4호, 메인 오퍼레이터 ADA 기동중...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관등성명을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강습대 보조관리자, 알렉스 크로드. 인식번호, AXA1988750. 분류코드 ASDD01."


[확인중... AXA1988750 ASDD01 알렉스 크로드 확인. 자가진단중입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알렉스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수첩을 펼쳤다. 딱히 물어볼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절차에 대한 확인은 자신이 해야했다.

입이 말라붙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그는 수첩에 쓰여진 문구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절차... 태블릿 기동과 연결. 사용자 확인 후, 방주를 진단하고... 진단중이지. 진단이 완료되면 현재 상황을 확인한 후 함내기능 정상화를 위해 다음 절차를 진행할 것..."


거기까지 읽은 알렉스는 그 뒤로 이어지는 십수장에 달하는 페이지에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는 얼굴근육을 느꼈다.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거친 손바닥의 감각이 욱씬거리는 관자놀이를 조금은 진정시키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많구나. 에이다가 없었다면 끔찍했겠어.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노벨상을 받았던가?"


ADA. 일종의 약어에서 이어진 이름인데 Auto Display Agent라는 조금은 괴상한 이름의 모선제어 인공지능을 에이다라고 줄여부르는 것이 보통의 방주탑승자들이었고 그러한 '보통의 방주탑승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알렉스 역시 그녀를 에이다라고 부르고 있었다. 인간의 지적능력과 별 차이 없는 수준의 인공지능인 ADA역시 자신을 에이다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했고 이러한 경향은 최초의 인공지능 개발자들에게는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신의 호불호를 '판단'하고 이를 사용자에게 정중하게 요청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해도 꽤나 대단한 일이었던 것. 23세기 초에 개발된 인공지능인 에이다가 23세기 말에 건조된 방주의 메인 인공지능이 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진화의 가능성이 있는 만큼 위험성도 높으나 방주탑승자가 얼마나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개발자들로서는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한 끝에 '생존의지'를 가진 에이다를 방주에 탑승시키는 것을 결정했다.


알렉스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고, 작금의 상황을 보자면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대륙에서 총합 5기가 건조되고 있었던 방주는 현재 단 한기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웅웅거리는 작은 기동음만이 들리던 중앙통제실에 에이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가진단 종료. 보고받으시겠습니까]


평이한 어조로 묻는 에이다에게 알렉스는 조금 메마린 입술을 적시며 대답했다.


"보고해줘.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순서대로."


[수락. 우선도를 정돈합니다. 일순위 방주. 이순위 탑승자. 삼순위 하위시설 및 부속. 사순위 항로설정]


에이다의 보고가 진행됨과 동시에 함장석 앞에 자리하던 디스플레이 테이블이 서서히 그 몸을 일으켜 60도 정도의 경사를 이루었다. 중앙통제실에 자리한 사람은 알렉스 혼자이기에 그가 보기에 가장 편한 각도로 설정한 듯하다. 이윽고 자동으로 전원이 들어온 디스플레이 테이블은 곧 방주- 이 거대한 우주선의 도면과 몇가지 디테일 항목을 텍스트와 도표를 통해 표시했다.


디스플레이가 종료됨과 동시에 에이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모선급 우주선, 방주 4호는 현재 메인터넌스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당초 예정보다 단축된 건조기간으로 내부시설의 63%는 미완성이며, 외벽은 카탈로그 스펙 기준 35%이하의 성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탑승자 수면실은 현상유지시 291일 4시간 후 전력감소로 인해 그 기능이 50%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최소 150일 이내에 메인터넌스를 통해 주동력원을 보수해야 합니다]


디스플레이 테이블의 도면에 붉게 빛나는 구획이 표시되었다. 작은 지시선이 하나 생기고 메인 파워 제네레이터라는 텍스트가 생겨난다. 우선적으로 확인해야하는 부분인가. 알렉스는 태블릿을 가볍게 두드렸고, 에이다는 말을 이었다.


[현재 방주 4호의 수면실에서 냉동수면중인 탑승자의 총원은 912명입니다. 이 중 생체신호가 기준미달인 탑승자는 572명으로, 긴급상황 발생확률이 70%이상으로 판단됩니다. 방주 4호의 메인터넌스를 위해 150일 이내에 최소 46명의 탑승자를 해동하여 활동가능상태로 전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냉동수면실은 방주 4호의 중앙 구획의 후면 부분. 동력실과 그리 멀지 않은 부분이다. 이번엔 짙은 주황색으로 표시되며, 46/572/912라는 텍스트가 기록되었다.


[하위시설 및 부속 영역은 현 사용자의 태블릿으로 정보를 전송하였습니다]


알렉스는 거치대에 붙여놓은 태블릿에 힐끔 시선을 주었다. 자그마한 텍스트가 주우우욱 올라간다. 양이 대단하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우선순위에 따라 정렬해 줘. 항로설정 보고를 부탁한다."


[방주 4호의 현재 항로는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 사용자가 항로를 지시하지 않을 경우, '제'가 항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바랍니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통제실에 자리한 CCTV가 그의 움직임을 확인한 것일까. 에이다는 이내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수락. 이제부터 방주 4호의 항로설정을 위해 위치정보 탐색합니다. 이에, 현 사용자에게 한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알렉스는 태블릿에 표시된 하위시설 및 부속 리스트를 살펴보며 말했다.


"말해봐. 아마도 허가하겠지만."


[방주 4호는 현재 메인터넌스를 필요로 하며, 이에 필요한 자재의 적재량은 '매우 부족'합니다. 정확한 리스트가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기에 단순한 부피측정 결과에 불과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액티브 소나와 레이더를 통한 1차 스캔의 결과, 중속전진으로 277시간 거리에 소행성대(Asteroid belt)의 존재를 감지. 소행성대의 반응에서 자재로 쓸 수 있는 금속류와 함께 리사이클(recycle-재활용)이 가능한 데브리(debris)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소행성대로 이동해서 드론을 이용해 자재를 확보해서 메인터넌스를 진행하며 동시에 탑승자를 깨운다?"


[정확합니다]


디스플레이 테이블에서 표시되던 방주의 도면이 한쪽 구석으로 작게 치워지면서, 점선과 선으로 가득한 지도가 표시된다. 2차원으로 표시된 지도인지라 추가로 x축과 y축이 따로 기록된다. 방주를 축으로 삼아서 기록된 것이겠지. 우주에서의 항해에 필요한 특유의 득도법은 알렉스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었고 공간지각력이 좋다고 평가받았던 만큼, 그의 머릿속에서는 주변의 모습이 느리지만 어느정도는 명확하게 떠올랐다.


알렉스가 주변의 지형을 떠올리는 동안, 에이다는 추가적으로 자신의 제안을 설명했다.


[따라서 방주 4호는 소행성대로 항해하며 동시에 리페어 드론과 마이닝 드론의 스탠바이(stand by) 상태로 변경합니다. 사용자는 소행성대 도착까지 소모되는 277시간 이내에 최소 6인 이상의 탑승자를 확보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동력원의 성능발휘가 고르지 않으므로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주동력원의 메인터넌스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알렉스는 양 손바닥으로 눈두덩이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함장석에서 일어났다.


"...이런 류의 업무는 취향이 아니지만 할 수 없나. 시작하자."


[수락. 필요한 절차와 정보는 태블릿을 통해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소행성대 도착까지 274시간.


알렉스는 태블릿을 이용해 방주의 내부도면을 확인하며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려 2시간동안 걷고 걷고 또 걸어 도착한 곳은 냉동수면실.


주동원력을 수리하고 자재확보를 위한 채굴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6명의 탑승자를 해동시켜 활동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야한다.


"에이다, 이렇게 거리가 먼데 최소한 엘리베이터 정도는 동작시켜달라고."


투덜거리는 알렉스의 목소리에 대한 대답은 태블릿의 내장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현재 방주 4호는 동력원의 출력이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일정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동력소모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동력원에의 부하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현 탑승자 중 사용자의 신체능력은 상위 24% 수준으로, 평지도보이동 6.8km는 문제없습니다]


"그야 그렇지만, 최소한 엘리베이터라도 사용할 수 있었다면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고!"


[냉동수면실까지 이제 230m 입니다]


"알고 있어..."


알렉스는 투덜거리면서 냉동수면실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섰다.


깔끔해보이는 은색의 금속제 문에는 제 1 냉동수면실이라는 명칭과 함께 '관계자외 출입 금지'라고 각인된 문패가 붙어 있다.


문 옆에 달린 넓은 패드에 손바닥을 붙이자 녹색 불빛이 상하로 가볍게 왕복하고 곧 '푸슉'하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우주선다운 공기압식 잠금장치의 소리. 


문이 열림과 동시에 서늘한 냉기가 알렉스의 다리를 스치며 복도로 향한다.

고작 이정도의 유출로 온도가 떨어지거나 탑승자의 몸에 뭔가 악영향이 미칠리도 없건만, 알렉스는 빠른 걸음으로 들어선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냉동수면실 내부의 전등이 순차적으로 켜진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일천개의 캡슐.

내부에 냉동된 탑승자의 상체부 정도는 확인할 수 있는 강화유리가 달린 뚜껑을 덮은 채로 냉동수면 중인 912명의 탑승자.


알렉스는 상의 주머니에서 고글을 꺼내 쓰며 말했다.


"에이다, 보조해줘. 최우선 목표는 주동력원의 보수, 그리고 드론 조작일테니 관련 기능이 있는 사람부터 깨우자고."


[수락. 지금부터 인식번호 AXA1988750 알렉스 크로드의 HUD 서포트를  시작합니다]


알렉스의 고글은 안면의 절반정도를 가리는 크기이다.

고글의 구석에서 익숙한 로고들이 지나가고 로딩 그래프가 상승한다.


캡슐들을 향해 몇 걸음을 옮기는 짧은 순간에 로딩이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화살표와 함께 몇줄의 텍스트가 표시된다. 이름, 나이, 성별, 인식번호, 분류코드. 그리고 보유기능리스트. 보유기능 리스트의 경우 데이터베이스에서 보유한 자격증을 그대로 표시한 것처럼 보였다.


[현재 제 1 냉동수면실은 본래 기능의 63% 수준입니다. 따라서 탑승자의 해동은 순차적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그렇겠지. 쉽게 풀릴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다."


알렉스는 태블릿과 고글을 통해 표시되는 정보들을 진지하게 살펴보며 캡슐 사이를 걸었다.


서늘한 냉기와 함께 극도로 가라앉은 고요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


얼마나 걸었을까. 알렉스는 하나의 캡슐 앞에 섰다.


그는 서늘한 캡슐의 강화유리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고글에 표시되는 텍스트의 첫 줄을 읽었다.


"사샤 이바노프나 보리스카야."


알렉스가 짚은 강화유리 너머로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가 잠들어있었다.


알렉스의 호명에 답한 것은 당연하게도 에이다였다.


[인식번호 BMF4992614. 분류코드 MRSS01. 사샤 이바노프나 보리스카야. 러시아 리페츠크 출생. 제 1종 아델륨 시설 관리보수기사. 제 1종 무인기 운영 기사. 제 2종 산업기계설비기사. 제 2종 전술기 운영 기사. 4개월간의 단기 전투훈련 이수. 설비관련 관리보수 종합평가 상위 4%에 해당됩니다]


"현재 가장 필요해보이는 인재로군. 주동력원의 메인터넌스, 드론 조작까지 가능하다, 라."


[가장 중요한 점은 연령 23세의 가임기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알렉스는 캡슐에 표시되는 바이탈 사인 그래프를 확인하던 도중 들려온 에이다의 뜬끔없는 소리에 맹한 표정을 지었다.

가임기 여성. 그야 23세니까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어째서 가장 중요한 점인지는 이해불가능이었다.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 전해진다는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보다 '아는게 힘'이라는 문구를 선호하는 알렉스로서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게 가장 중요한 점이 되는거야?"


[인식번호 AXA1988750 알렉스 크로드는 현재 34세의 신체관련 종합평가 상위 2%의 신체강건한 남성입니다. 방주 4호의 정원 및 필요승무원수에 비추어 볼때 탑승자의 확보는 중요. 따라서 가임기 여성을 통한 탑승원의 증가는 매우 중요하며 권장사항입니다]


알렉스는 캡슐을 조작하던 손을 멈추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가 훝어본 탑승자 리스트의 기억에 따르자면 -

방주 4호의 성비는 상당한 불균형 상태다.


"너, 그거 최악이야. 농담이라면 웃어넘기겠지만 진담이라면 앞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엄청난 혼란이 올거라고."


[수락. 이후 탑승자의 인원 증가에 대해서는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네 말은 어느쪽이야. 농담이냐, 진담이냐?"


에이다는 대답하지 않았고 알렉스는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연적으로 캡슐 내부에 냉동수면중인 사샤를 살펴볼 수 밖에 없었고, 현 시대 최고의 인공지능이 인정한 신체강건한 남성으로서는 해동 절차에 필요한 부분 외에 시선이 닿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겠다.


외모는... 합격점. 색소가 옅은 머리카락도 단정한 이목구비도 보기에 좋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발달도중이라고 할 수 있는 어려보이는 체형이긴 한데... 어린 시절에 성장이 멈추었나. 아니면 유전적으로...


"네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알렉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에이다는 최고의 인공지능답게 알렉스의 외침을 무시하고 해동절차를 진행했다.


[현재 캡슐번호 614호기는 해동절차 진행중입니다. 30초 후 기능회복 절차로 들어가니 작업자께서는 노란 선 안쪽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무시하기냐... 뭐 좋아. 그 외에 내가 할 일은?"


[냉동수면 시에는 의복착용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인식번호 BMF4992614가 착용할 의복을 확인, 운반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내부작업용 드론은 비활성화 상태이기에 저로서는 해당절차에 착수 할 수 없습니다]


"의복... 캡슐번호가 614호니까 614번 캐비넷인가..."


[물론 원하신다면 '예측하지 못한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614번 캐비넷은 동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식번호 BMF4992614는 의복의 착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나름 예의바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자신하던 알렉스로서는 에이다의 말을 끊고 소리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얘기는 그만하라고 했잖아!"

Posted by GSFelon